▣ 시인의 말 내 삶의 바깥은 나와 상관없이 늘 푸르다. 내 안, 칡넝쿨 엉켜 칡꽃향도 져버린 나의 길은 어디에 숨겨져 있는가? 주춤거리는 하루 앞에서의 또 망설임 설사 길이 환히 열린다 해도 어둠에 익숙한 날들 눈부심을 견딜 수나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이 죄라면 죄다, 시를 사랑한 아름다운 오류다. 절대(?) 사랑 앞에 되돌아서야 하는 절대(?) 이별 뒤의 상처다, 나의 시는. 이 시집을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놓고 나는, 너덧 계단 더 아래 겸손으로 내려서리라. 1999년 가을에 심옥남. <맛보기> 봄, 추억이다 어린 바람이 나뭇가지 무등을 탄다 목련꽃이 귓볼을 통통 퉁기던 삼월의 끝에서 뾰족뾰족 돋아난 봄볕을 캐고 있다 ‘아가’하고 부르자 여린 국화 순이 한 웅큼 흩어진다 허공, 동공 속에선 꽃다지가 노랗게 하늘거리고 빈 손엔 한 줌 고요가 한 줌의 햇살이 모른 체 앞개울로 내달린다 아지랑이 떼도 그리움 쪽 능선을 타고 넘는 들녘 언저리가 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