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이 글을 쓰는 곳은 강원도 어느 산골입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대관령에서 8킬로 정도 남쪽으로 내려간 하진부라는 작은 면소재지에 있는 민박집이니 나의 집과 가족이 있는 경기도하고 김포에서 멀다면 꽤나 먼 곳인 셈이죠.눈물이 납니다. 전등불이 있는데도 일부러 사다 켜 놓은 촛불이 산골의 정취를 더해 주고, 이름 모를 밤새의 울음 소리 처량하지만 나의 눈물은 사실 곡절이 있는 눈물입니다. 집을 나온 지 1년이 됩니다. 아무 기척 없이 집을 나와 이 세상 속에 나 자신을 실종시키는 의식을 치렀으니 오늘 밤, 이 시간 나의 고향집 낡은 지붕 밑에선 정한수 한 대접 떠놓고 노모께서 제사를 지내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일곱 살 난 자식 놈이 대주가 되어서 말이죠.기막힌 일입니다. 강원도 땅 어느 산간에서 촛불을 의지해 글을 쓰는 산 자를 기려(?) 고향집에선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제사는 과히 틀린 것도 아닙니다. 오늘 나는 이 한 통의 유서가 완성되면 한 줌이나 되는 쎄코날을 먹고 나의 명운을 마감하려 하니까요.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삶을 포기하는 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뭔일을 못하겠느냐 등 여러 사설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그런 사유나 철학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절망, 사면의 벽이나 천길 벼랑에서의 낙하 중과 같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절대절명의 상황 바로 그 상황의 중심부에 지금 나는 놓여진 것입니다.촛불의 농이 책상 위에 떨어집니다. 종이의 여백도 그 끝을 다하고 있습니다.어떡해야 할까요. 나는 살인자입니다.)1년 전 나는 영종도 동쪽에 있는 한 작은 방파제 위에 3일 전 집을 나올 때 착용하고 있던 장갑과 목도리, 그리고 구두를 가지런하게 벗어놓고 그 위에 편지지에 쓴 메모를 남긴 일이 있습니다. 살기 싫다는 것과 아내와 자식놈에게 미안하다는 것, 그리고 내 앞으로 되어 있는 약간의 재산을 법대로 처리하라는 일종의 유서 한 통을 남긴 것이죠.물론 내가 나의 개인 소지품들과 메모만을 남겨놓고 그 시퍼런 바다 속으로 투신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자살한 것으로 꾸며놓고 먼 곳에서 쌍안경을 통해 나의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친구나 주변 사람들의 동태를 살펴보았습니다.장난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천지신명 일월성신에 두고 맹세하길, 나는 누구를 골탕 먹인다거나 희극적 상황을 꾸며놓고 그를 훔쳐보며 즐기려는 정신착란증 환자는 아니니까요. 다만 남편 알기를 거지 발싸개로 여기는 아내와 그것도 여자라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어떤 놈(?)을 당황스럽게 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