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제의 추리소설 [피의 반란]을 소개합니다.맛보기'오십이 초.'정지 표시등이 켜졌다. 스물네 개의 문이 동시에 열리며 승객들이 쏟아져나왔다. 사람들은 소떼처럼 출구 쪽을 향해 부산스럽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차량 안으로 들어갔다.'이십삼 초.'정지 표시등이 꺼졌다. 스물네 개의 문이 동시에 닫힌다. 밖을 살피던 운전 조수의 몸이 안으로 사라지고, 전동차는 일정한 차륜 소리를 울리며 레일 위를 구르기 시작한다. 차창마다 승객들의 얼굴이 스치며 지나쳐 간다. 그리고 이어 전동차가 정지 구역을 완전히 빠져나가고 난 다음, 건너편 승강장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이번엔 좀 느렸어.'스톱워치를 누르며 형이 중얼거렸다.'잘 기억해. 전동차가 진입하고 나서 이삼 초 사이라고. 그게 가장 적당해.'형은 시계를 넣고 담배를 꺼냈다. 피우겠냐고 손짓을 했을 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해가 지고 있는 서편 하늘이 커다란 화염 속에 휩싸인 듯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움직임을 멈춘 불자락처럼, 사방에 흩어져 있는 구름의 틈으로 태양은 서서히 잠기는 중이었다. 나무도 집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끝없이 뻗어나간 레일 위로는 석양의 잔광이 핏물처럼 붉게 묻어져 있어 한결 시야가 선연했다.'한 번 더 해보자.'가쁘게 기침을 쿨럭이며 형이 말했다.'그만해.''아냐, 한 번만 더 해.''그만 하래두. 그쯤 했으면 됐잖아.''이 자식이 근데…….'형이 으르렁거렸다.'임마, 한 번 더 하겠다는데 웬 말이 많아!'그는 불쾌하게 내뱉으며 꽁초를 휴지통 쪽으로 던졌다. 벤치 옆 철제 휴지통 주위엔 구둣발에 짓밟힌 꽁초들이 널려 있어 너저분했다.'뭐든 확실히 해두는 게 좋은 거야. 이게 유일한 선택이란 거 너도 알지? 우리한테 달리 방법이 없는 거야.''알았어, 맘대로 해.'유우제의 추리소설피의 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