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려요!' 남자의 목소리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들려 왔는데, 분명히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사람의 가식없는 절박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다분히 허스키한 목소리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거긴 어디죠? 댁은 누구시구요?' 허순경의 목소리도 덩달아 조급해졌고, 그녀는 더듬기조차 했다. 그러나 상대방으로부터 더는 대꾸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억누른 신음소리만이 전해 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니, 그것은 찰나적인 한순간의 침묵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가히 고막을 찢을 듯한 총성이 울렸다. 한 방, 두 방, 그리고 세 방! 세상에 무슨 원한이 있기에 세 방씩이나 쏜 걸까! 총성을 듣는 순간 엄청나게 놀라면서도 허순경의 머릿속을 감도는 거짓없는 소감이었다. 곧 이어 유리창이 부서져 내리는 듯한 소리도 들렸는데, 공중전화 부스의 유리가 깨지는 소리 같기도 했고, 침실 창문이 부서지는 소기 같기도 했다. 한순간 허순경의 시야 저편에 공중전화 부스에서 필사적으로 전화기에 매달려 구원을 청하는 희생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비정한 킬러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하면, 호사스런 침실에서 나이트 가운 차림의 아름다운 여인이 배반한 남자의 심장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기는 실루엣이 하얗게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아득히 먼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열차의 기적 소리도 하나의 환청처럼 들려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화선을 타고 들려 오는 것 같기도 했고, 청사빌딩 밖에서 들려 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밤 9시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맨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살인 무대는 필경 텔레비젼을 켜놓을 수 있는 장소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호사스럽게 꾸민 저택의 거실이든가, 아니면 달리는 세단의 뒷자석일 것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허순경은 허망한 시도인 줄 알면서도 피격당한 남자와의 통화를 이으려 했다. 바깥 세계의 아직도 전화선을 타고 전해 오는 걸 봐서는 전화가 끊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윽고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것도 대답이라고 한다면 <딸각> 하고 전화가 끊기는 소리였다. 아마도 최후의 구원을 요청한 남자의 심장에 방아쇠를 당긴 비정한 살인자가 수화기를 제자리에 올려 놓은 듯 했다.

* 함남 풍산 출생
* 75년 단편추리소설 <죽음의 멜로디>발표
* 88년 제4회 한국추리문학대상 수상
* 한국추리작가협회 부회장, 국제펜클럽 회원
* <배신의 계절>, <금지된 밀월>, <야간 항로>
* <위험한 외출>(이상 장편추리소설)
* <아름다운 용의자>, <블랙 레이디>
(이상 단편추리소설)외 작품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