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① 1일째“띠리리… 띠리리…”벨은 정확히 0시에 울렸다. “여보세요?”사내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받았다.“저….”“누굴 찾으십니까?”“저….”“말씀을 하세요.”사내의 목소리는 한층 더 짜증스러워졌다.“사실은… 너무 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주세요.”촉촉하게 젖은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빠져나왔다.“무슨….”사내는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에 다소 긴장했다.“너무 외로워서… 그냥 전화번호를 아무렇게나 눌렀거든요.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사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죄송해요. 마뜩치 않으시면 끊을게요. 절 미친년이라 보셔도 좋아요. 그럼, 실례했….”“아, 아닙니다.”사내는 슬픔이 진하게 배어 있는 그녀의 말을 황급히 잘랐다. 본능적으로 이대로 전화를 끊게 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던 것이다.“사실은 저도 외롭던 참이었습니다.”사내는 입가에 침을 발랐다.“정말요? 그거 다행이네요. 첫 번째 시도에서 이렇게 대화상대를 구하다니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요.”“오히려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은데요. 뭐하시는 분이에요?”“저는… 탤런트예요.”“탤런트? 이름이 뭐죠?”“말하고 싶지 않아요.”“왜죠?”“아마 절 TV에서 보셨을 거예요. 그래서 이름을 말하면 금방 아실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제가 전화를 건 것은 무의미해져요.”“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제가 원하는 건 익명성이에요. 무슨 얘기라도 할 수 있잖아요. 제 주위에는 마음놓고 얘기할 사람이 없어요. 잘못했다간 그것이 루머가 되고, 기사가 되니까요. 그러면 저는 인기에 치명타를 입죠.”“무슨 말인지 알겠군요.”“그저 추측만 하세요. 그게 더 자극적이잖아요.”“자극적이라….”사내는 다시 입가에 침을 발랐다.“그래요. 그리고 우리 둘만의 비밀이에요. 약속해줘요. 혹시라도 주간지 등에 모 탤런트가 심야에 이상한 전화를 일삼는다라고 나지 않게요.”그녀는 정말 걱정이 된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걱정마십시오. 요즘은 어디 돌아다니면서 떠들 형편이 되지 않으니까요.”사내는 자조적으로 말했다.“안 좋은 일 있으세요?”“휴… 뺑소니 사고를 당해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답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