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이상한 주검>눈이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었다. 날씨까지 추웠기 때문에 눈은 녹지 않고 그대로 땅바닥 위에 쌓여 얼어붙었다. 그래서 사람도 차도 꽤나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12월 하순의 번화가의 밤거리는 어느 때보다도 휘황한 불빛들로 단장되어 있었고, 여기저기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솜처럼 부드러운 눈송이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난롯가에 앉아 창문 너머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담스럽게 내리고 있는 함박눈을 찬탄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살결이 곱고 통통해 보이는 스무 살의 처녀였다. 여고를 졸업하고 지금의 양품점에 취직이랍시고 들어왔는데 월급도 적은데다 너무 심심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 볼까 생각하고 있는 참이었다. 하얀 폴라셔츠가 희고 앳된 얼굴을 더욱 귀엽게 해 주고 있었다. 셔츠 위로 불룩하게 솟은 젖무덤이 남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몸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쳐다보았다. 8시15분이었다. 퇴근은 보통 8시경에 하는데 12월에 들어서는 연말에 한몫 봐야 한다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따라 10시까지 가게를 보고 있었다. 사귄지 얼마 안된 그녀의 애인은 데이트를 할 수 없다고 언제나 투덜거리곤 했다. 두 달 전에 알게 된 키가 큰 그 대학생 애인은 거의 매일 그녀를 만나기 위해 10시까지 기다려주곤 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만난 끝에는 으레 그녀를 여관으로 끌고 가려고 해서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았다. 하지만 몸을 요구하는 그 유혹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유혹이 있고, 그것을 용케 뿌리치는 아슬아슬한 스릴이 있어서 더욱 그를 만나는 것이 즐거운지도 몰랐다. 오늘같이 눈 오는 밤에 그의 품에 안기면 얼마나 좋을까. 발가벗고 말이야. 오늘 밤 모든 걸 주어 버릴까. 기분이 어떨까. 아프지 않을까. 너무 아파 까무러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녀는 얼굴을 확 붉혔다. 갑자기 손님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손님은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손님은 조금 큰 키에 깡마른 인상의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고수머리에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콧잔등이 매의 부리처럼 휘어 있었다. 가늘게 찢어진 두 눈은 섬뜩하리만큼 차가운 느낌이었다. 베이지색의 구겨진 바바리 코트를 입고 있는데 코트 깃에 가려진 목의 왼쪽 언저리에 자상으로 생긴 흉터가 조금 보이고 있었다. 코트 안에는 두툼한 밤색 털 셔츠를 받쳐입고 있었다. 코트의 앞자락은 열어 놓은 채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르고 있었다. 깡마른 인상이지만 운동으로 단련된 듯한 단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사나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점원은 숨이 막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단편「경찰관」으로 문단에 나온 이후「우리가 소년이 되었을 때」「어느 창녀의 죽음」「17년」등 많은 작품과 한국미스테리 문학의 기념비적 걸작「최후의 증인」「제오열」, 대하소설「여명의 눈동자」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