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아직도 곳곳에 어둠이 묻어 있고 안개가 짙게 깔린 시간이었다. 안양교도소의 육중한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한 사나이를 뱉어냈다. 사나이는 뒤에서 문이 닫기고도 잠시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겹겹한 안개의 벽이 기다렸다는 듯 그의 몸을 에워싸고 있었다. 초여름인데도 사나이는 아직 겨울 점퍼를 입고 있었다. 퇴색한 점퍼 위로 촉촉히 물기가 내려앉고 있었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딱 벌어진 어깨가 어딘지 강인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넓은 이마에 비교적 잘 생긴 용모였지만 콧날이 주저 앉아 다소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고 턱 밑으로 긴 흉터가 나있었다. 이윽고 사나이는 담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도 그렇다고 어디 바삐 갈 곳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침착한 걸음걸이였다. 미세한 안개의 입자가 무리를 지어 달려들고 있었다. 사나이는 마치 안개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뒤쪽 길 끝에 검은색의 중형 승용차가 한 대 정거해 있었다. 승용차는 사나이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더니, 그가 움직이자 따라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는 곧 사나이를 따라잡았지만 앞질러 가지는 않고 사나이의 보조에 맞춰서 느리게 주행했다. 차 안에는 선글라스를 낀 감색 싱글 차림의 남자가 혼자서 운전하고 있었는데 그는 가끔 곁눈질로 사나이를 보았다. 그래도 사나이는 차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옆에 차가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태도였다. 마침내 골목이 끝나고 큰도로로 이어졌다. 그러자 차가 조금 앞질러서 정거했다. 도어가 열렸다. 그때서야 사나이는 처음으로 옆을 돌아보더니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랐다. 차가 출발했다. '고생 많았지.' 차를 운전하는 사나이 이민수가 말했다. '고생은 뭐...' 교도소에서 나온 사나이 유용문은 덤덤하게 말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지난 3년간 그의 자유를 구속했던 붉은 건물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안개가 교도소와 그의 시야 사이를 차단하며 3년의 세월을 단번에 용해시켜 내리는 것 같았다. 감회가 새로울 텐데도 그는 시종 감정의 변화를 얼굴에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