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미술관」개관 첫날이었다. 전국 열 네 곳을 순회하며 전시회를 여는 일정에서 첫 번째 행사를 병원에서 가지는 의미가 돋보였다. 그림구경은 내가 무거운 일로 병원에 들렸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천천히 칸막이를 돌아가다가 수채화 부분에서 발길이 멈추어졌다. 가슴속에서 싸∼하며 바람이 일어났다. 저녁 노을이 아련한 하늘 위에 떠있는 현란한 색채의 구름,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한 하늘 윗부분에 구름꽃이 피어 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여 푸른 공기가 떠도는 한강변의 풍경이다. 앞쪽에 그려진 건물의 창에는 붉게 불이 켜져 있다. 강과 하늘이 맞닿은 오른편 모서리에 그린 이의 낙관이 무늬처럼 찍혀 그것마저 구도의 일부분으로 처리된 양 단정했다. 대칭이 되는 왼편에 세워진 전신주의 검정색 선이 뚜렷해서 전체적으로 아스라한 분위기에 강한 인상을 주었다. 「한강 위에 뜬구름」정상복 님의 수채화다. 수채화가 풍기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물도록 마음을 잡는다. 가까이 섰다가 멀리 떨어져서 보기도 하며 좋은 그림을 만난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내가 그린 그림 중에도 하늘을 많이 그린 것이 있었다. 학교를 막 졸업하고 부임한 젊은 미술 선생님은 교실에서 이론을 가르치는 것보다 밖에 나가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 하셨다. 우리가 각기 운동장에 흩어져 앉으면 선생님은 나무에 기대어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노래 불렀다. 운동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붉은 벽돌로 지은 교사와 그 뒤편의 나직한 산, 산자락에 모여 있는 낡은 초가집들, 운동장을 지나 저 멀리로 보이는 동산과 산 끝에 우뚝 세워진 예배당이었다. 풍경화를 그리기에는 너무 평범한 정경이었지만 따스한 봄볕이 운동장에 나와 앉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임을 주었다.- 「움직이는 미술관에서」 중에서청자 연적의 꼬부라진 한 잎 연꽃 무늬같이 파격이 있어 마음에 잔잔한 무늬를 만들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의 소망처럼 그녀의 수필에선 내밀한 정감의 무늬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