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수여행」성희는 현관을 들어서다 말고 기겁을 했다. 안쪽 응접실에 여자가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베이지색 모자를 쓴 채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여자의 눈은 반쯤 감겨 있고 성희를 향하고 있다.다가가서 보니 여자는 죽어 있었다. 죽은 지 오랜 듯 냄새가 풍겼고 살갗은 이미 검푸르게 변해있다. 성희의 것과 똑같은 연보라색 원피스요. 베이지색 모자다. 목 언저리에 칼로 찔린 자국이 서너군데 피로 얼룩져 있었다. 칼로 목을 찔러 죽인 후 옷을 갈아 입히고 모자를 씌운 모습이다. 성희는 유령의 집을 빠져나오듯 그 집을 벗어났다.2. 「사공」사람들은 여기를 바위쏘라 부르는데 바로 이곳에서 가끔 사람이 빠져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그래, 그년이 배를 건너 나갔단 말이여?''그년이 그 석호놈과 만나는 걸 봤다는구나! 지난 장날말이다.'경식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화가 난 듯 일어서서 처마의 전등불 스위치를 껐다. 불가에 몰려 있던 모기, 하루살이, 나방 등이 흩어졌다.3. 「포르노 치료법」시체는 적색 대리석 욕조 옆 연두색 바닥에 웅크린 채 모로 누워 있었다. 목에는 날이 긴 가위의 두 날개가 반쯤 벌어진 상태로 깊이 박혔고, 연한 살색의 네글리제는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다. 팔과 가슴에도 가위 날에 의한 상처가 다섯 군데나 발견되었다. 홀건히 흐른 피가 입고 있는 잠옷과 바닥에 응고되었다.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단이 듬성듬성 잘려 있고 욕실바닥에 흩뿌린 듯 널려 있었다. 휑한 눈은 대리석 벽면에 호화롭게 새겨진 한 쌍의 원앙새 문양을 향했다. 욕실에서는 비릿한 피냄새와 비누와 향수가 습기 속에 뒤범벅되어 역겨운 냄새가 톡 쏘듯 물씬 풍겨나왔다.4. 「고해성사」남편은 오늘도 늦는다.왜 늦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미리 말을 안한 지도 오래다. 늦는다는 전화마저 없어진 지 역시 오래다.초등학교 교사가 학교가 끝나면 무슨 볼일이 그리도 많겠는가. 지희는 남편이 왜 늦는지 그 이유를 안다.다 그 여선생 때문이다.5. 「황산염 복수」인숙은 농약가게에서 제초용 황산염수 일 홉 들이 한 병을 샀다. 밤중에 최영호의 양복을 걸어놓고 황산염수를 약간 뿌려보았다. 피시식 소리와 함께 양복이 검게 그을려짐은 눈으로 확인했다.'아니, 얘는! 지금 돈이 문제니? 그년이 네 서방을 가로채 있는 게 문제지. 그년이 뭐라던? 또 네 남편이란 작자는 도대체 뭐라고 변명하던?'6. 「외딴 묘지의 비밀」그날 밤 민우가 잠을 자다 눈을 떠보니 이경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모로 누운 이경이 어두움 속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놀란 민우가 일어나 불을 켰다. '왜 이래, 당신? 어디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