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1>그날 아침, 갑방(甲方) 작업장들을 돌아보기 위해 갱도장(坑這長) 조만준(趙萬俊)은 갱 구로부터 755미터를 축전차(蓄電車)로 들어가 수갱(努坑) 앞에서 내려 승강기에 올랐다. 초속 7미터의 속도로 지하 깊은 곳을 향해 떨어져 내려가는 수갱 승강기는 마치 덜 만들어진 철제 상자와도 같았다. 아래위와 양쪽 옆만 철판으로 되어 있었고 앞뒤는 텅 비어 있는 데다 출입문 대신 쇠사슬 한 가닥을 가로질러 걸쳐놓았을 뿐이었다. 만준은 승강기를 타고 수갱을 내려갈 때마다 자신이 괴상한 강철 두레박에 실려 지옥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갱도의 총연장 거리가 10만 미터나 되는 이 거대한 탄광의 주갱도는 수직으로 내려가면서 75미터씩 간격을 두고 수평으로 뚫려있는데, 가장 위쪽의 670 ML(미터 레벨)로부터 시작하여 최심부의0(제로) ML까지 아홉 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만준은 그의 책임 구역인 225 M7에서 승강기를 멈추었다. 여刻시 삼십분이었다. 만준이 1크로스(수평 운반갱도의 분기선)에서 5크로스까지 파고들어 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열두 개의 채탄과 굴진 막장을 돌아보기 위해 동력실을 지나 안으로 계속 걸어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부터 번쩍 하는 강렬한 섬광과 함께'펑'하고 폭음이 울리는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추며 방금 지나온 갱도를 돌아보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동력실이 불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변압기가 폭발한 모양인지 시뻘건 불길이 치솟으면서 싯누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삽시간에 동력실 부근을 자욱히 메우기 시작했다. 만준은 즉시 몸을 돌이켜 동력실 쪽으로 달려갔다. '불이야, 불이 났다!'동력실 부근에서 일하고 있던 서너 명의 광원도 놀라 소리치며 뛰쳐나왔다. '불이다, 불!''불이야! 마카(모두) 모여라!'그러나 아무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만준은 그들과 함께 불길을 잡아보려고 달려들었으나 이미 불길은 그들의 힘만으로는 걷잡을 수 없이 거 세어지고 있었다. 동력실 근처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소화장비가 하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소화탄이나 소화기 따위로는 어림도 없을 지경이었다. 불은 벌써 변압기가 폭발하면서 나무판자, 기름통, 톱밥과 갱목, 그리고 전선(電線) 같은 불타기 쉬운 것들에 옮겨 붙어서 마구 번지고 있었다. 불길이 점점 번지자 만준은 광원들을 급히 갱 밖으로 내보내 화재사고 발생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은 다시 막장들이 있는 갱도 속으로 달려들어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