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1>한종달(韓鐘達)이 길목강도 같은 자들에게 마구잡이로 붙잡혀 파출소로 끌려간 시간은 그날 밤 열 시쯤이었다. 그것도 집에서 겨우 5백여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동네 입구에서였다. 더구나 기막힌 사실은 그날이 바로 종달이 지난 2년 동안 다니던 주간 신문사에 사표를 쓰고 나온 날이었으니, 참으로 악운이 겹치고 덮친 억세게도 재수 없는 날이었다. 종달을 강제로 연행한 합동단속반은 군인 두 명, 경찰 두 명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날 밤 그들의 언행은 국민의 세금으로 먹이고 입혀주며 국토 방위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 유지, 국민의 인권과 재산보호 등을 맡긴 군인과 경찰이라기보다는 그저 무지막지한 깡패들과 거의 다를 바 없었다. 불심검문을 당할 때 종달이 약간 취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후좌우조차 제대로 분별하지 못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그때 종달은 같은 부서 동료들이 마련한 석별의 술자리가 끝난 뒤 버스를 타고 동네 입구 큰길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어디선가 갑자기 건장한 사내 한 무리가 불쑥 나타나더니 앞길을 가로막고 나섰던 것이다. '여보쇼, 잠깐 주민등록증 좀 봅시다!'모두 네 명이었고, 그 가운데 누군가가 입을 열었는데 얼른 듣기에도 참으로 거칠고 무례한 말투였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는가 싶어 종달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그는 이제 겨우 이십대 중반의, 머리를 짧게 깎은 새파란 젊은이였다. 나머지 세 사람은 비교적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모두 삼십대 중반은 넘지 않은 듯했다. '당신들 뭐요? 뭣 때문에 갑자기 주민등록증은 보자는 거요?'술기운도 좀 오른 데다가 난데없이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불손한 태도로 시비를 걸어오자 종달은 이내 불쾌한 기분이 치밀어 올랐다. 따라서 그의 말투도 반사적으로 거칠게 튀어나갔다. 그 다음 순간이었다. '이 새끼 좀 봐! 지금이 어느 땐 줄 알구서 함부루 까불어! 합동단속반을 뭘루 보는 거여, 엉?'그 젊은 녀석이 마구 내뱉더니 느닷없이 종달의 정강이를 구둣발로 힘껏 걷어찼다. 뜻밖의 공격에 종달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푹 고꾸라지는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젊은 녀석이 신고 있는 군화였다. 종달은 아차 싶었다. 그제서야 지금은 지난해 12.12 쿠데타로 군권(軍權)을 탈취한 전두환(全斗煥)과 노태우(盧泰愚)를 비롯한 일부 정치군인들이 총검을 앞세운 채 제 세상을 만난 듯 안하무인격으로 설쳐대는 공포의 계엄 치하라는 사실이 머리에 떠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