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잉여인간(剩餘人間)>불에 탄 한 시체가 2000년 1월 1일 새벽에 평택시 비전동에 있는 덕동산 기슭에서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시체의 주인공은 비전1동에 살고 있는 심상해 씨로 밝혀졌다. 만년 작가 지망생이었던 심 씨는 생활 문제로 아내와 자주 다투다 이혼 당한 후, 알코올 중독으로 평택역 근처를 전전하며 구걸을 하다시피 하여 목숨을 연명해 왔다는 것이다. 경찰은 심 씨가 사고 발생지의 근처에서 주워 모은 마른나무와 자신이 습작을 했던 원고지에 휘발유를 붓고 그 위에 몸을 눕힌 뒤 불을 질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작품은, 그가 자살을 하기 직전 사고지 인근에 실수로 떨어뜨린 것으로 보이는 원고를, 본 신문사에서 긴급 입수한 것이다. 원고지가 누렇게 변색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가 오래 전에 쓴 작품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소설 주인공의 이름에 자신의 것을 그대로 차용해 쓰고 있다. 이로 미루어 이 작품은 그의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일 시 분명하다. 비록 문단에 얼굴 한 번을 내밀지도 못한 사람의 작품이고, 그래서 다소 함량에 미달되는 소설이나, 이승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저승의 문을 스스로 열어야만 했던 그의 영혼에 조그마한 위로가 될까 하여, 이지역 신문사의 하나인 본사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게재하기로 한다. 혹 우리 신문사의 다소 감상적인 이런 행위가 잘못 된 것이라면 고인과 유족, 그리고 이 지역 독자의 넓은 양해를 바란다. <김춘식 문화부장>어벌쩡하는 사이에 내일이면, 심상해도, 불혹의 문턱에 들어선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심상해는 일력을 힐끔 봤다. 그것은 한 장만 남아 있었다. 올해 초였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두툼한 새 일력을 받고, 마음이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바닥까지 졸아들어 있었다. 벌써 세 해째였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달라져야 한다고 속다짐했다. 심상해는 일력에 가 있는 눈길을 빼내 창 밖으로 던졌다 겨울의 한가운데임에도 늦가을인지 초봄인지 모를, 어수선한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 짝에도 쓰잘 데 없는 겨울비마저 추적거렸다. 을씨년스러웠다. 계절에 걸맞게 함박눈이라도 펑펑 쏟아져 줬으면 좋으련만, 하늘은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창 너머에서 소요하고 있던 시선을 끌어다, 아내(장미화)가 벗어 놓은 옷가지에 쑤셔 박았다. 거기서 점액질처럼 끈끈한 아내의 체취가 나는 듯했다. 심상해의 아내는 지금 학원에 있다. 그의 아내는, 그가 가장으로서의 직분마저 내동댕이치고 말 것을, 오래 전부터 예감하고 있었던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