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이란 일찍이 희랍의 철인 프로타고라스가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신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에 대해서 생명, 즉 인간의 세계를 가치의 척도로 삼는 사상체계를 말한다면, 정한모의 시에서 일관되게 보여지는 생명의 탐구나 생명예찬은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정한모는 일제의 식민지배, 국토분단과 이념투쟁, 자유당 독재, 6·25의 비극, 군사독재, 산업사회의 비인간화에 맞서 현실로 뛰어들지 않고 문학의 순수성을 지켰다. 그는 어두운 시대를 견디어내는 삶의 윤리를 휴머니즘 사상에서 찾고 이를 시적으로 형상화했던 것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생명경외사상은 그 나름의 현실과 대응하는 방식 또는 윤리였다. 순수한 서정시인 정한모는 직접적으로 현실 삶에 뛰어들지 않았으나 그것을 문학적 상상력에 반영시켜 한 시대의 문학정신을 높이 승화시키는 데 남다른 공적을 남겼다. 그가 탐구하고 열망했던 생명외경의 정신은 우리 시사(詩史)에서 하나의 독특한 족적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