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판으로만 50만 질이 팔린 세계문화 안내서의 최고봉--영국의 <제노포보스 가이드>의 유시민 편역판, 러시아편 보기만큼 위험한 북극곰이랄 수는 없는, 토론을 잘하는, 무엇보다 '마음'을 존중하는, 따라서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영혼을 열어보이는, 그러나 거짓말도 세련되게 잘하는, 인생관이 정말 특별한-'인생은 달콤하지만 짧다. 내일이 되면 눈 속에 파묻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러시아 문화 이야기.광활한 날씨와 추운 날씨 때문에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기에 참고 견디는 태도와 운명론은 러시아 국민성의 일부이다. 그들의 특별한 인생관만큼 음악, 문학, 영화 등 예술적 대작을 생산해내고 있다. 러시아인은 서로 억세게 껴안는 인사를 나누며 낯선 사람을 만나면 악수를 한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며, 가장 큰 오락은 음식을 차려놓고 흥청망청 보내는 것이다.저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 나라에 눌러 앉아버린 `후천적 아웃사이더`의 자세로 끝까지 이방인다운 태도를 견지하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특성과 장점을 해학적인 어조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태어나 자란 것처럼 '내부고발자'의 눈으로 스위스의 문화를 예리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낱낱이 파헤쳐 보인다. 저자가 가진 정보는 정확하며, 그 정보를 처리하는 시각은 비판적이다. 몇 달 여행해 본 정도의 경험만으로 쓴 문화기행이나, 몇 년 정도 단순한 `아웃사이더`로 살아 본 경험을 풀어 쓴 외국문화 안내서와는 아예 비교할 수조차 없는 빼어난 외국문화 가이드이다.

엘리자베스 로버츠 (Elizabeth Roberts)는 언제나 러시아를 일종의 병으로 여겼다. 그녀는 열네 살에 이 병에 걸렸으며 여전히 같은 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병은 더욱 깊어져 매년 두세번씩 러시아를 찾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저널리스트로서 여러 신문에서 활동한 20대와 30대에 잠깐 회복세를 보였지만 1981년 존 로버치와 결혼하면서 병은 다시 악화되었다. 존이 영국 외무부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와 교류하는 재단의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런던의 집에 끊임없이 러시아 손님이 찾아들고 공식 비공식적으로 존이 그 나라라고 하는 러시아를 자주 찾게 되면서 러시아 병이 나을 가능성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이 병은 가족에게까지 감염되었다. 큰딸이 대학에서 러시아 연구를 전공으로 선택한 데 이어, 오페라 가수인 둘째 딸마저 어느 날부터인가 목욕탕에서 완벽한 러시아 악센트로 이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올가의 아리아를 연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로버츠 가족은 지금 스코틀랜드의 소나무 숲에서 구석구석 러시아 성상 조각이 선 다차를 지어 놓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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