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생각에는 ‘길(思路)’과 ‘맥(傳統)’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통문화가 민주문화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큰 혼란이 일고 있습니다. 새로운 창조를 위한 산고인지, 반세기도 되지 않아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말폐(末弊)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동양의 선두주자 일본이나 개발시대의 한국, 싱가포르, 타이완은 유교의 장점에 민주주의를 접목해서 기적적인 발전을 이루었는데, 지금 우리는 전통사상의 단점과 민주주의의 단점이 결합해서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합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국민의 정신적 기운과 궤를 같이 합니다. 상서로운 기운이 충천하면 나라가 흥하고 말폐에 빠지면 망합니다. 삼국통일의 원동력이었던 화랑도가 말폐로 흐르자 신라가 망했고, 고려는 불교의 말폐로 망했고, 조선은 유교(성리학)의 말폐로 망했습니다. 고대 희랍은 민주주의의 말폐로, 로마는 가톨릭의 말폐로 망했습니다. 그것은 한 나라의 라이프 사이클이기도 합니다. 한 나라가 호쾌한 기상으로 탄생해서 욱일승천하는 흥륭기를 맞이했다가 유약한 안일에 빠져 망하기까지의 곡선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최단 기간에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었음은 자랑이지만 동시에 쉽게 허물어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산물과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뒤편에서는 증오와 반목과 갈등이 사회를 음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승천의 기상과 말폐의 증후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진취적인 젊은이와 퇴영에 빠진 젊은이의 공존이 그 예입니다. 행동을 지배하는 의식, 사유체계, 인식능력, 가치 체계가 왜곡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가치 체계를 모색, 제3의 창조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상(反想)이 아니라 파괴로 가는 부정(否定)의 세계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우리 경제를 선도해 오던 첨단기업들이 다국적기업의 날개를 달고 활동 무대를 세계로 넓힘은 웅비이기도 하고, 부정(否定)을 피한 도피이기도 할 것입니다. 산업공동화(空洞化)는 그 예일 것입니다. 반론이 아닌 내분은 나라의 전진을 가로막습니다. 지금 내분은 우리가 한 공동체에서 사는 것인가를 의심케 할 정도입니다. 우리 의식이 왜 그렇게 왜곡되었을까요. 그 원인은 사유(思惟) 체계와 가치 체계의 맥락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의식(意識)은 유구한 역사가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둘이 충돌하면서 새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나 새 시대를 맞으면서 겪게 되는 현상이지만 우리는 병적이랄 정도로 심한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정신적 맥(脈)이 있습니다. 새로운 정신의 탄생은 그 바탕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런 큰 화두에 생각을 모아봅니다. 우리 행동을 지배하는 의식을 추적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횡적, 시대적 역사 탐구가 아니라 종적, 정신적 맥락의 추적입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천착하지 못하고 세상과 좀 떨어진 망중한의 소요(逍遙) 속에서 지난 일들을 되새김질하며 원인의 원인을 생각해 보다가 얻은 단상(斷想)일 뿐입니다. 공자의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혼미할 것이오(學而不思則罔),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다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는 말씀에서 후자에 속할 것입니다. 하여 ‘내용이 없는 사고(思考)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칸트)이라는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 저어되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사유, 사로를 한국사(韓國思)라는 조어(造語)로 그 코드를 찾아봅니다. 그러나 그 코드를 추적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단지 한 주제를 놓고 이러 저러 생각된 점을 모아본 단편일 뿐입니다. 하나의 힌트로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차 례 □머리말 Ⅰ 사로(思路)를 찾아 1 운명을 바꾸는 열쇠 2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사는가 3 대인이라야 대국을 만든다 4 사유(思惟)의 용광로 5 이화(理化, Reasoning) 훈련 Ⅱ 집단행동의 단초, 중구삭금(衆口?金) 1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2 최고의 문제해결 방식 3 권력화한 집단행동 4 전문가 집단 등장 5 오래 된 전통 6 현인(賢人)을 밀어내는 다중(多衆) 7 반쪽 민주주의 8 민주주의는 허상? Ⅲ 민주주의의 발원/혈구지도(?矩之道) 1 공자와 민주주의 2 백성과 언론과 여론 3 자유의 충돌 4 민주화의 덫 5 역주행하는 민주주의 6 암군(暗君)과 영신(?臣) Ⅳ 자기중심주의를 강화시킨/추기급인(推己及人) 1 혈구지도를 이어 2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3 주관적 커뮤니케이션 4 엇나가는 소통 5 세상을 ‘내 뜻대로’ 6 편견(偏見) 편신(偏信) 편론(偏論) 7 자기중심이 치도(治道)를 병들게 한다 8 민주주의의 걸림돌 9 산업계에 드리운 자기중심의 주름살 10 또 하나의 병폐, 진로방해(進路妨害) 11 ‘나 우선’을 가르치는 교육 12 나 중심과 우리 중심 Ⅴ 정직성에 융통성을 준 자위부은/子爲父隱) 1 참과 거짓의 혼란 2 부모의 잘못은 덮어주라 3 강자의 거짓말, 약자의 거짓말 4 거짓의 두더지 게임 5 남과 북의 거짓말 행진 6 손자병법과 결투 7 거짓의 자유로 태어나는 괴담 Ⅵ.출세를 부추기는 효/양명현친(揚名顯親) 1 효의 어제와 오늘 2 효의 역작용 3 효의 새로운 개념 4 노인 배척은 업보 5 사랑해서 슬픈 사람들 6 젊은이 세상 7 노인과 일 Ⅶ 신분의 평등/상하합심(上下合心) 1 점점 벌어지는 상과 하 2 평등의 두 갈래 3 노사(勞使)는 같은 얼굴 4 큰 우리, 작은 우리 5 편과 패의 싸움 6 평등과 자유 7 평등사회에 성역이 너무 많다 8 꽈배기 평등 9 ‘일류’의 평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