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나는 우리동네 버스종점(鐘點)에 잇는 목포(木浦)집에서 면포(綿布)를 쓰고 죽은 구찬기씨와 시인(詩人) 김대륙, 강학수 그리고 늘 척골한 가시나무와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다. 도중에 조송달이 제비날개를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고 낭패한 얼굴을 해가지고 들어왔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제비날개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으나 그래도 가시나무만이 그녀를 옆에 앉혔다. 우리는 따로 날을 정해놓고 모이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날씨가 우중충하면 곧잘 모이곤 했다. 대개는 별 말없이 마주보고 앉아 술만 마시다간 뿔뿔이 흩어졌다. ...(후략) 소설적(小說的) 기교(技巧)의 새로운 발전 -「가시나무집」을 중심으로 김우종(문학평론가) 몇몇 작가가 특정 문제를 계속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 아니라 단편 하나하나의 연작 형식을 통해서 특정 문제를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민병삼의 <가시나무집>은 <제비 날개>와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뿌리 뽑힌 초목처럼 삶의 길을 잃은 여인들, 그들이 그래도 어딘가 쓸모가 있다고 한다면 비록 썩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의 기구(器具)를 지니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 여인들은 더욱 비정한 학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또 <제비 날개>의 경우에 그 여인은 감옥에서 갓 나온 두 사내로부터 번갈아 강간을 당하는 데 비하여 <가시나무집>의 여인들은 스스로 술집에서 술을 따르고 농락을 당해 주는 대가로 밥을 먹고 있을 따름이다. ...(후략)

자서(自序) 우울한 광대의 끝 버스 종점(終點) 젖 곰보 전라도 아저씨 달팽이 눈깔 엿 제비 날개 가시나무집 홍은동(弘恩洞) 아이 춘자의 등 낮술 왜 면포(綿布)로 죽었는가 소설적(小說的) 기교(技巧)의 새로운 발전 / 문학평론가 김우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