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없고 나 아닌 것도 없다>고 시인 이승훈은 「자서」에서 말하고 있다. 이미 발표했던 시 47편과 신작 24편을 포함하여 전부 71편의 시가 수록된 그의 이번 시집에서, 그는 자신이 그동안 추구하고 모색해왔던 타자로서의 너에 대한 애정과 증오, 확신과 갈등, 집념과 좌절을 한편 한편의 시로 형상화하였다. 이때의 너에는 도구화된 시와 시인, 대상화된 언어, 객관화된 나, 흔적 없는 죽음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추구하기 위한 시적 장치로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패러디이며 이를 통해서 그는 자신의 시에서 궁극적으로 절대타자의 정체를 모색하고 있다. 「너」외 19편의 시가 수록된 제1부에서부터 「언어」외 17편의 시가 수록된 제2부와 「이승훈 씨의 열 가지 생각」외 15편의 시가 수록된 제3부를 거쳐 「죽은 아우를 생각하며」외 16편의 시가 수록된 제4부까지, 시인으로서의 이승훈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절대타자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작업의 바탕은 물론 마틴 부버가 말하는 나-그것의 관계에서 나-너의 관계에 있으며, 이러한 관계를 근간으로 하여 이승훈은 자신의 시에서 나-나의 관계를 좀더 분명하고 명쾌하고 확실하게 정립하고자 한다. 그의 이러한 작업과정은 너로 표상화된 나에 대한 애정이고 연민이며 사랑이고 그리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 질문 바람 부는 날 풍선기 1호 겨울 왕십리 너라는 햇빛 너 너를 닮은 의자 너를 만나고 너에게 이르는 길 잿더미 속에서의 미소 모든 새는 날아가지 봄 비 두 개의 나무 다시 당신의 방 왕십리 네! 미소의 불꽃 등받이 없는 의자 닭장 앞에서 낮은 길다 2 언 어 난 당신 아저씨 당신은 그동안 밤낮으로 밤이던 인생 사랑의 시작 아름다운 계절 너라는 역 난 글쓰는 사람 아름다운 새여 나의 삶 시골 의사 막다른 골목 격 언 현대시와 돈 끄노에게 사랑이라는 이름 난 아직도 어린애 텍스트로서의 삶 3 한강의 오리들아 시간이 없다! 사 랑 결 단 김수영의 비숍 여사 엔조 쿠치 이승훈 씨의 열 가지 생각 나의 한 조각에 대해 낡은 스웨터 너를 만난 저녁 쏘파 위치에 대하여 인 간 칸 나 극에 달하다 저무는 봄 춘천을 생각하며 4 한국적 작문 사랑의 슬픔 대 구 기 차 한용환 교수의 편지에 대한 시 눈 내리는 저녁 잠 글쓰기의 영도 아 침 봄날은 간다 임제 스님 목월 선생님 생각 도라지 어머니 죽은 아우를 생각하며 맥주 두 병의 밤 시 인 해설｜윤호병 타자화된 너와 객관화된 나 - 그 끊임없는 추구와 모색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