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민병도가 『무상의 집』을 지었다. 굳이 시인이라고 그 의 이름 앞에 관형어를 붙이는 까닭은 그가 화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그는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표현의 양식을 더 갖고 있지만, 그를 곁에서 지켜보면 그것도 늘 부족해 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민병도가 이 세상을 향해 할 말이 참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그는 어느 쪽에 더 심혈을 쏟고 있는가 하는 것이 속물스럽게 궁금하기도 한게 사실이었다. 이 궁금증에 대해 그가 여섯 번째 개인전(93.11)의 팜플렛에서 나의 시는 이 시대에 대한 진단이며 나의 그림은 그 처방이고 싶다 고 하여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는 의식의 궤를 짐작케 해 주었다.

1. 무상의 집 오월의 다리 들풀 잡초에게 칼의 속성 거리에는 텔레비전은 끌 수가 있다 지평의 노래 해바라기 대자보 절망의 시 그믐날 어둠보다 어두운 노래 저녁 종소리 굶어 죽은 개 어둠의 뿌리 갈대 2. 정녕 나를 버리고 그대 안에 도라지꽃 이슬 뿌리 연꽃 그리운 그 곳 너에게로 가는 일 그대 신음 노래가 되리 안개 속에서 소나기 걸레 파종 우산 별은 우리는 지금 고추잠자리 3. 달빛 푸른 날에 거미집 금부자의 담쌓기 재 화살 말 빈집 나무는 분청 탑 길에는 이제 공존 낮달 이 세상 모든 것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4. 천심을 건너지 못해 귀뚜라미 대장장이 김씨 안개 탐석 어머니는 하늘길 팔공산 행 폭염 초설 원정리행(1) 원정리행(2) 원정리행(3) 영혼에 무명옷 입은 원 한오백년 5. 연잎 위의 기도 피아노 소곡 냉이꽃 삽화 단풍 강 지는 풀잎 위에도 꽃잎이 지는 것은 환영(1) 환영(2) 소금 통일약사여래 소견 지지 않는 불씨 정말로 놀라운 것은 아침노을 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