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률 시인의 첫 시집 『나는 한 평 남짓의 지구 세입자』가 보여주는 세계는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이러한 ‘존재 양식’의 삶을 지양하는 한 젊은 시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고달프게 부대끼며 살아가는 나날의 생활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빈번히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가 풍경으로써의 자연 묘사를 즐기는 시인이 아니라 인간 묘사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시인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상처받고 소외당한 사람들. ‘대낮의 그늘’속에 버려져 있는 사람들을 하나같이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로 여기면서, 그 하나하나의 모습을 자신의 가족이나 핏줄인 양 그려 보여준다. 풍경화를 거의 그리지 않고 인물화만을 고집했던 화가 모딜리아니와 마찬가지로, 이성률 시인 역시 인간의 얼굴과 그 마음의 움직임을 그리기 좋아하는 휴머니즘의 초상화가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제1부 아름다운 동행 목 디스크 수첩을 옮기며 어둠 속의 내가 낯설지 않다 수면내시경 그래도 삶은 여름볕이 달다 주말농장 내 마음의 평수 새벽부터 비 울더니 제라늄 계양산을 오르며 제2부 빗소리가 나를 부르다 착각 사랑이 죽어가고 있었다 아버지 유품 태우고 온 날 길은 딸아이 실내화에도 있었다 나는 한 평 남짓의 지구 세입자 24시 나는 과연 나이기나 한지 · 1 되찾은 이름 내 아픔만 커 보이고 우리 시대의 노인 조금만 더 귀 기울이면 제3부 연변 홍씨 말레이시아 여자 벌목공 얼음 속의 어머니 생일 버려지는 것들은 · 1 분재 이별은 길을 나서지 않고 걔 어때 채워지지 않는 잔 청약통장 해약한 날 더불어 가을비 제4부 어린 소매치기 오늘도 지옥은 계속된다 불가마 속 아이들 선진조국 유예 바로잡는다는 사람들에게 · 3 천일야화 자동문 개꿈 밖으로 부싯돌이 되자 그나마 불을 놓다 제5부 어느 주부의 만찬사 천상의 진실은 하나 명동보리밥 출퇴근 전쟁 지구 고객 제일주의 살아생전에 안내견 아내가 두고 간 너무 많은 아내 자물쇠 더불어 살아라 발라내고 싶다 해설 · 이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