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날아온 상처투성이 백조 최수완. 우연처럼 시작된 관계, 거래이고 계약, 철저한 비즈니스. 그저 하룻밤을 사고팔았을 뿐이었다. 그들의 첫 만남,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시작된 밤이었다. 남자는 그 밤 거침없이 여자를 취했고, 여자는 순순히 자신을 내주었다. 하지만 위선과 위악,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두 사람이 찾는 건 오직 하나, 순결한 열망이었다. “이렇게 되길 원한 게 아니에요.”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맥없이 말했다. 속상해서, 그와 자신 모두에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데 무력감에 울고만 싶어졌다. 태원은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그녀를 일깨웠다.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진 않아. 받아들여. 어쩔 수 없잖아. 너와 내가 만든 결과인데……. 인정하라고.” “당신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죠? 어떻게 당신은!” “아무렇지 않아 보여? 남의 말 쉽게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일은 추문이고 터부적인 얘깃거리일 텐데? 당장 주가가 떨어지고, 이사회에선 회장 자격 운운하며 못 잡아먹어 난리일 텐데. 속 편하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나?” 원망스런 앙탈에 돌아온 대꾸가 너무 가혹하게 들려 수완은 몸을 움찔했다. 그의 눈빛이 검고 탁하게 그녀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수완은 가까스로 아픈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니 낳지 않으면 간단해요. 이런 문제들에 고민할 거 없이. 누구나 하는 거죠. 십 대 여자애들도 하는 거니 어려울 게 없는 일이죠.” “그래서 할 수 있어? 넌 그게 쉬워서 날 찾아온 건가? 아니. 절대 아니지. 너 스스로 결정하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려 한 거잖아.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 여기면 좀 더 수월할 테니까. 아니면 내가 말려주길 바랐거나. 틀려?” 속을 찌르는 말에 수완은 눈물이 고인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래요. 그렇다고 해요. 그러면 당신은요? 당신은 이 아이를 순수하게 바라나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요? 당신에게 이 아이는 뭐죠? 그저 황태원의 유전자를 받은, 책임져야 할 핏줄이요? 당신의 솔직한 마음은 뭐예요!” “난…… 기대가 돼. 생애 처음 아무 조건 없이 내 마음을 전부 쏟아 부을 존재가 생긴다는데 가슴이 뛰어. 그걸로…… 부족한가?”

필명 서풍. 2000년 문학웹진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으로 <시간의 얼굴> <스완> <그녀를 위하여> <야만의 계절> <애증의 시간> <내가 기다린 사랑> 등이 있다. E-mail : zephyr1203@hanmail.net

이 책은 내용 자체에 목차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