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도 같은 시련 끝에 다시 찾은 사랑! 고통과 슬픔, 원한과 분노, 애욕과 집착으로 죽어 있던 시간이 사랑으로, 그리움으로 다시 깨어난다. 그는 좀 못된 남자였다. 아니. 냉정하고, 날카롭고, 까다로워 도통 편하게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설렘 가득한 감정에 굴복했고, 그들은 뜨겁게 사랑했다. 비극이 닥쳐오기 전까지……. 인서는 잠이 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사 같은 얼굴로 곤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릿해지면서도 사람 마음을 멋대로 흐트러트려 놓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어쩜 저렇게 편안히 잠들 수 있나 분한 생각이 들었다. 2시간 전 그녀를 맞아들이기 위해 객실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순간 숨이 멎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화장을 지운 뽀얀 얼굴, 샴푸향이 폴폴 풍겨오는 생머리, 짧은 티셔츠와 면바지 밑으로 쑥 드러난 희고 고운 팔다리.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의, 순진하고 청아해서 도무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여자 아이를 연상시켰다. 손을 대기도 겁이 나고, 그렇다고 만질 수 없는 건 더 참을 수가 없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그녀가 잠든 소파 맞은편에 앉아 깊은 시선으로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어둡게 일렁이는 남자의 시선 안에 모든 게 다 들어 있었다. 가련한 침묵, 참을 수 없는 열망, 애타는 집착과 욕심, 그리고 간절한 기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혜원은 갑자기 소스라치는 기분에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는 뚫어질 듯 응시하던 시선을 치우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이 빨개져 상대의 눈길을 피해버린 건 그녀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졸았나 봐요. 아, 그러니까…… 어디까지 했더라.” “가서 자요.” “하지만 아직 일이…….” “가라니까.” 평소처럼 사무적이고 건조한 말소리가 아니었다. 강압적으로 명령하는 소리. 욕구불만에 억눌린, 통제 안 되는 불안정한 성깔을 어쩌지 못하고 간신히 뻗쳐내는 소리였다.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책임지지 못한다는 위협이고, 경고였다. 혜원은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삼킬 듯 응시하는 그의 눈빛이 너무 사납고 강렬해 더럭 겁이 났다. 그녀는 가슴이 졸아드는 기분에 도망치듯 허둥지둥 그의 객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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