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노래하고 풍경을 시詩로 담아
감나무를 올려다보니 연한 주황빛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감이 나뭇잎사이에서 반짝이고 있다. 머지않아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서리가 내리면 꼭지까지 붉어져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아버지께서는 망태를 단 긴 가지로 하나둘 감을 따 모으시리라. 더러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 떨어지겠지만 하나라도 그냥 버리지 않고 조심스레 주워 흙을 털고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 실한 것들과 구분하여 담으실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가 써 온 시詩들이 감처럼 느껴진다.
밤하늘에 축포가 터지듯 번지는 상념들이 감나무 가지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달빛에 감꽃들은 눈부시게 빛나고 은은한 향기는 하늘 가득 퍼진다. 큰 바람이 아니라도 어느 것은 힘에 겨워 스스로 낙화가 된다. 미리 적어 기록으로 남겼다하여 그것이 다 한 줄의 시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수많은 감꽃 중에서 햇살아래 수정이 된 몇몇만이 초록의 열매가 되어 해맑은 얼굴을 세상에 드러낸다. 그렇게 자라서 땡감이 잘 익은 단감도 되고 홍시감도 된다.
서리를 맞았으니 떫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바구니에 담는다. 마당 여기저기에 모아놓은 감을 담기 위해 대바구니를 준비했다. 몇 번을 걸음 하여 그들이 서로 부딪혀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감을 담는다. 어느새 네 바구니 째다. 이만큼 수확을 이루게 해 준 나무가 고맙다. 나의 시에 나무가 되어 준 풍경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과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노자는 ‘도생지道生之 덕축지德畜之’라 하여 도道는 만물을 낳고 덕德은 만물을 기른다고 했다. 모든 것을 낳고 모든 것을 기르고 자라게 하고 양육하고 감싸주고 실하게 하고 먹여주고 덮어주는, 도道와 덕德은 만물을 낳았으나 소유하려들지 않으며 기르지만 그것에 기대려하지 않고 지배하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연을 노래하고 풍경을 시로 담아 채반에 올리는 일이 덕德이라면 그처럼 현덕玄德을 이루는 일은 앞으로 내게 남은 과제다. 내 것이라 주장하고 가지려하지 말며 기대지 말고 주인 행세를 하려고도 말 일이다.
시집 한 권을 좋은 말의 보고寶庫로 생각하고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서,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 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는 귀한 분의 말씀에 행여 누가 되지나 않을까 저어하면서 아름다운 이 가을에 네 번째 시집을 엮는다. 시를 쓸 수 있는 날들이 고맙다.

시집을 내면서

1장 하늘이 물속에 들어와
바다
꽃
봄
논두렁
고독
미로
물처럼
존재
타인의 거리
그리움·둘
오리
물머리 집
만복사지萬福寺址
그대여! 창문을 열라
식영정 망가忘歌
풀


2장 태초의 색깔과 바람
달맞이꽃
물의 자유
오래된 옷
시간
해
단축번호
촛불
고구마꽃
팡야만
천지
토마토
하섬
그림 속 그림
증도
디지탈리스
활엽수


3장 나무는 수평으로
고흐의 별밤
문·1
문·2
어승생 오름
정선생의 각서
고구마
천지나무
포말
해운대
감 기
시계
은행잎
별
감
유영游泳
차나무


4장 오래된 가을처럼
경계에 서서
구름이어라
고향에 가면
우리가 함께라면
바람·하나
바람·둘
제주 가는 길
매화
빛
커피
훈춘
그림 앞에서
방울토마토·둘
외출
초가을
푸른 대숲에 들어

에필로그
시인詩人 조 미 애
바람불어 좋은날 판권지